즈린스키 (Zrinski)와 프랑코판 (Frankopan) 의 역사
즈린스키 (Zrinski) 와 프랑코판 (Frankopan)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으로 그들의 삶과 업적은 “노블리치아스 오블리갓” (Nobilitas obligat,특권은 책임과 함께 온다)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는 그들의 존재 의의에 부합하는 의무였고 이들이 17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중앙 집권주의와 전제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해 오스만 정복자들이 쳐들어 올 때 홀로 방어에 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가문은 혼맥으로 이어져 있으며, 슬루니와 주변 지역은 프랑코판에 의해 통치되었고, 이들의 영역은 오스만 침략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인물은 프란호 프랑코판 슬루니스키 (Franjo Frankopan Slunjski (1536-1572))로, 그는 그의 사람들과 도시를 버리지 않았으며, 크로아티아 독립 운동이 구호 그대로 레리퀴아 레리퀴아룸 (reliquia reliquiarum, rests of the remnants:나머지의 나머지)) 로 쇠락할 때도 그리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오스만 점령지가 슬루니를 점령 실패하는 시기를 산 사람으로서 그 용기가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고귀한 영웅은 교육자이자 문인이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황제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비엔나 인근에서 참수되는 순간까지도 즈린스키와 프란코판 가문의 영웅들은 문학으로 남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보냈습니다. 페터 즈린스키 (Petar Zrinski)는 아내 카타리나 프랑코판 (Katarina Frankopan) 에게 유서를 남겼으며, 같은 해 몇 개의 언어로 번역 되었고, 프란 크르스토 프랑코판 (Fran Krsto Frankopan)은 아내에게 “죽는 자야말로 진정 영원히 사는 자로다” (“Navik on živi ki zgine pošteno” (The one who dies honestly lives forever))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