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루니의 프란조 (Franjo)
프란조 프란코판 슬루니스키 (Franjo Frankopan Slunjski, 1536-1572)는 어려운 시기를 살아내야 하는 삶의 도전을 매우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회지도자는 슬루니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오스만 정복자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군단을 지휘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총독으로서 “일리리야 후예들의 검과 방패”를 주창했고 그의 가신들은 군인으로 거듭났습니다. 생전에 그의 요새는 13회에 달하는 오스만의 슬루니 (Slunj) 침략 시도 동안 한번도 적의 손에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술탄이 주기적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에 그의 태도에 대해 불평했다고도 합니다. 그의 세력이 가신 20명으로 줄어들었을 때, 그는 다시 총독의 역할을 맡아 전쟁이 명분이 아닌 자신만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1572년 그는 헝가리로 떠나 부유한 헝가리 상류층의 딸과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결혼식을 진행 중 이 위대한 전사는 바라주딘 (Varaždin) 에서 궤양을 제대로 처치하지 못해 사망했습니다. 대규모의 하객들은 오스만과의 전투를 기억하던 크로아티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슬퍼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프란조 프란코판 슬루니스키는 대장부로서, 범부의 삶을 뛰어넘는 삶을 살았습니다.